Marketerview_ 반찬박스 마케팅 리뷰
Intro. 실패를 마주하는 법
인생에서의 전성기, 제일 잘나갔던 시절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어린이 바둑선수 시절’이라 답할 거 같다. 4살?5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굉장히 어릴적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순간에 어릴적 배웠던 것들을 불현듯 나도 모르게 많이 써먹는 편이다.
여러 대회들을 준비하면서, 꼬마 승부사가 되기 위해 눈물 찔끔나도록 혹독하게 배웠던 것 중에 하나가 ‘복기’다. 복기는 대국이 끝난 후에, 이겼든 졌든 내가 오늘 뒀던 판을 다시 한번 둬보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엔 지는 날에는 다시는 보기도 싫은 나의 실패, 패배를 다시 마주하는게 너무 싫고 괴로웠다. 복기를 하다보면 내가 왜 졌는지, 어느 순간에 상대가 날 어떻게 이기게 됬는지 알게 된다. 져버린 내 자신이 너무 싫고 화나지만 애써 꾹꾹 참고 마주하는 연습을 했었다. 덕분에 7살 유치부를 시작으로 10살까지 대회에 나가면 항상 트로피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당당하게 인생 통틀어 그 때를 제일 잘나갔던 시절이였노라 추억한다.(파워당당)
어쩜 이 블로그도 어떤 관점으로 보면 3년간의 일의 기쁨과 슬픔들을 적으면서 지난날들을 돌아 보고 있는 거 같다. 오늘 내가 리뷰하려고 하는 반찬박스는 사실 나에게 많은 실패의 경험을 안겨준 녀석이다. 눈물없인 볼 수 없는 내 2여년간에 얽힌 고난과 역경들을 하나씩 복기해보도록 한다.
고난과 좌절의 히스토리 : 갖가지 상품들을 팔아보고 설치도 철거도 해본 이야기
앞으로 얘기하는 3가지 상품은 언택트 시대에 발맞춰 야심차게 개발되었던 벤딩머신에서 팔리게 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나와 벤딩머신의 첫 만남은 기획안이였다. 팀 선배님이 TF로 떠나시고 나서, 나를 잠깐 만났을 때 요새 이런거 한다며 기획안을 보여주셨었다. 어느 새 그 때 그 기획안은 벤딩머신 기계로 탄생해 있었고, 그 무렵에 다시 한 팀이 되었고 우연히도 계속 나는 그 벤딩머신에서 이것 저것 파는 일을 자꾸만 맡게 되었다. 이건 내가 당시 벤딩머신을 소개했던 UI화면이다
처음 팔았던 상품은 작고 귀여운 꼬마김밥, 상품을 닮아 작고 귀여웠던 일매출
조식으로 팔던 꼬마김밥을 잘 팔리지 않는 점심 도시락 대신 판매하자고 했다. 이런 결정을 위에서 내리고 나면, 어떻게 고객과 소통할지 셀링포인트로 무엇을 살려서 어필할지가 내게 떨어지는 과제들이다.
아직까지도 사옥에서는 꼬마김밥을 판매 하고있다, 지금도 하루에 아침 점심으로 끼니당 열개 정도 팔리고 있다. 사람들은 매일 열댓개 파는게 뭐냐고, 뭐라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흥망성쇠의 기준을 가늠하기 어려운거 같다.
식수 대비 데일리로 판매하는 식사 대용식이 몇개가 팔려야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칭할까? 라는 물음과 함께 돌아보면 이때 조금 더 지속적으로 광고를 해봤다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일주일간 두어번 보내고 말았는데 당일엔 반짝은 좀 팔렸지만 지나고 나니 다시 판매량은 제자리였다. 지속적으로 내 상품에 대한 관리를 하지 않았다. 주인의식도 부족했고 그냥 일회성 광고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던거 같다.
두번째로 팔았던 상품은 풀을 돈주고 먹지 않는 나에게 닥친 샐러드라는 고난
여기서 굴하면 회사가 아니지! 이번엔 야심차게 공유오피스라는 신경로에 미니 마켓 외에도 벤딩머신을 설치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나한테 주어진 과제는 샐러드 박스를 팔건데 데일리박스에 대한 컨셉을 잡고 패키지 디자인하고 벤딩머신UI를 기획하고 매출 활성화를 위한 마케팅 하는 일이였다. 늘 그렇듯 촉박하고 비용 없이고 진행은 되야되고^^ 정말 포토박스에 두고 상품 하나하나 촬영하고, 외주 디자이너와 함께 9시 10시까지 회사 전화,핸드폰 두개로 양쪽 귀에 대고 전화해가면서 상품 확인하고 UI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을 수정하고 또 했었다. 웜그레이와 쿨그레이 무슨 컬러 넘버10과 11의 차이 그런거로 하루종일 못알아듣겠는 용어들과 함께 야근의 파도에서 헤엄쳤다 (당시 퇴근길에 술이 너무 땡겨서 술을 사서 집을 간 첫번째 경험을 한 날이였다^^)
강제로 열심히 한거긴 하지만, 내가 야근해가며 기획한 것들을 너무 보고싶었다. 그렇게 오픈 준비를 마치고 선릉 스파크플러스에 오픈하는 날, 누가 가라고 한적도 없는데 나는 우겨서 설치를 직접 보겠다고 했다. 설치에 문제가 생겨 설치 업체와 영업 담당자님과 밤 12시까지 설치하고 구동되는 걸 확인해야 했기에 퇴근을 못했다.
할증 붙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고 그렇게 혼을 쏟았음에도, 결국 판매량 부진으로 철거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스파크 플러스에서도 볼 수 없다(눙물) 왜 실패했을까? 일단 나는 샐러드를 몰라도 한참 몰랐고 먹는 고객들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도 부족 했던 거 같다. 신선함이 생명인 샐러드를 보이지 않는 벤딩머신에서 팔았다는 것, 공유오피스에서 일하는 타겟들은 식사의 편리함을 중요하게 여긴 점은 기획 당시와 일치했지만, 샐러드를 먹더라도 좀 더 단백질이 보충되어 식사가 충분히 되고나서 편리해야 했다. 이 점은 나중에 다이어트를 필요로 했던 항공사 오프라인에서 판매 하게 되면서 한번 더 반증되었다.
3. 마침내 등장하는 오늘의 주인공, 마지막 상품 반찬 박스
앞으로 점차 워라밸이 중요한 시대가 오고, 우리 회사 역시도 유연근무제로 석식을 운영하지 않게 된 점을 보완하는 상품으로, 판매 수요가 있을거라고 했다. 일단 이렇게 상품을 기획하는 절차부터 참여한 적은 처음이였고 나도 소비자로서 기획 의도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 전과는 다른 점이였다. 샐러드때랑 똑같이 상품에 대한 전반적인 수많은 과제가 떨어졌다.
그리고 나도 이번엔 좀 잘 팔아보고 싶었다. 그 때, 비슷한 타겟팅으로 C사와 합작으로 만든 밀키트 상품TF를 하셨던 팀장님이 생각났다.
“팀장님, C사는 대한민국 솔직히 뭐 거의 식품 히트 제조기잖아요, 걔들은 어떻게 상품 기획해요? 마케팅해요? 진짜 책에 나오는 거 처럼 상품 생애주기 이런거 다정하고 하나요? 상품 셀링 전략이 있나요?”
“너 걔들이랑 같이 그룹 교육 안들었니? 걔들이 성공사례 줄기차게 설명하잖냐 이럴때 그런거 좀 꺼내서 찾아보고 좀 해라”
뉘예……그리고 진짜로 몇년만에 먼지 털털 묻은 서랍 마지막 칸 나의 창고에서 교육자료를 진짜 꺼내서 일하다 틈날때마다 하나하나 읽었다. 평소에는 팀장님 말을 징그럽게 안 듣는데 이번엔 하란대로 곧장 했다. 그만큼 망하기 싫었다는 증거였다…..ㅎ_ㅎ
그 자료에도 별건 없었다. 맨날 마케팅 서적에 줄기차게 나오는 뻔한 소리들, 반찬을 파는 것은 상인이고 Value를 주는 것이 마케팅이라고 한단다. 그래, 그럼 난 뭘 팔것인가? 가만히 앉아서 고민 또 고민 생각나면 바로바로 이렇게 막 적는다
이 반찬박스를 구매함으로써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내가 내린 답은 바로 ‘여유로운 저녁 시간’이였다. 그래서 완성된 메세지는 리얼 저녁 솔루션, 당신의 저녁이 충전을 위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반찬박스!
당시 사내 그룹방송 인터뷰 내용으로 상품 상세 기획을 덧붙여 본다
Q. 반찬박스를 기획하게 된 인사이트를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내답 : 식사 대체상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짜 요리된 식사다운 식사,진짜 집밥에 대한 소비자니즈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사 점포운영을 통한 식단 구성 역량과 위생안전을 강점으로 하여 기존 반찬가게 반찬과의 차별화 포인트로 2인이상 1회 최적 식사가능 용량으로 구성하여 상품을 기획했습니다
Q. 반찬박스 메뉴구성 기획은?
내답 : 메뉴구성은 메인찬은 저희의 점포 운영경험을 통한 고객선호도 위주로 구성하였으며 밑반찬같은 경우에는 집에서 조리하기 어렵거나 선호도있는 젓갈류를로 구성했습니다.
Q. 반찬박스 확대 운영 계획은?
내답 :1차 확대는 계열사 내 식음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피스 경로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3번째 상품 런칭광고를 릴리즈했다..!
고난과 좌절,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였다. 장문의 사과문까지 써 본 이야기
내가 런칭 광고로 썼던 ‘엄마 밥 줘’ 워딩, MRS라는 단어를 포함한 벤딩머신 브랜드 네임으로 젠더 감수성 논란이 인트라넷에 터졌다. 시대가 어느땐데 왜 엄마가 밥하냐 MRS라는 단어는 미국에서도 안쓴다 등 화력은 오랜만에 전 그룹사 사람들이 참여해 폭발적인 논쟁이 이어졌다.. 나는 내 한마디의 단어선택 하나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장문의 사과문을 보고했고,,우리는 잠정적 광고 중단과 패키지 및 모든 홍보물에서 해당 벤딩머신 브랜드를 삭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모든 홍보가 중단되고, 오픈 했던 초기와 다르게 일별 판매량은 다시 하락했다.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샐러드 판매때 아쉬웠던 것처럼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아서 아쉬웠기에 나는 반찬가게 사장님이다 라는 생각으로 전과 다르게 몇시에 사는지, 누가 사는지 분석도 해보려 카드결제 기반으로 요일별 매출도 추려보고 재구매율도 봤다. 그리고 점차 판매량을 꼬마김밥을 팔면서 아쉬웠던 것처럼 매일매일 사내 광고메일을 보냈으며 외근을 가는날에는 누구에게라도 부탁해서 거의 빠짐없이 보냈다. (그래서 어떤사람은 예약메일을 걸어놨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또 QC관리 차원에서 실제로 상품을 많이 사먹고 그 시간에 벤딩머신 앞에도 많이 가보고 진짜 그 앞에서 고객들 말도 들어보고 행동도 많이 관찰했다.
아직도 진행중인 반찬박스
이 리뷰를 쓰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반찬박스를 팔고 있다. 사전 프로모션으로 매대 판매도 해봤고 예약제 서비스 프로모션도 해봤고 뭐 여러 논란 후에 반찬의 귀환을 알리는 업그레이드 메일 그리고 업그레이드 버전2까지 진행하며 매출을 끌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이젠 제법 일별 판매량도 늘었고 아직도 여전히 나는 오늘의 반찬 메뉴를 메일링하고 판매시간부터 몇개가 팔렸는지 확인하며 다음날 안도하는게 내 일과의 시작과 끝이 되었다.
아쉬움도 서운함도 결국은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
불 꺼진 프로모션 준비 현장에서 혼자 마지막 점검을 할 때 그 기분, 불안과 함께하는 설렘 그런 모든 감정들, 결국 모든 아쉬움도 서운함도 모두 좋아서 나오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하게 된다. 이렇게 눈물겹게 우여곡절 많았던 이 모든 상품과 벤딩머신은 날 12시까지 집에 못가게도 했고, 역대 최고 야근기록도 세우게 해줬으며 술을 사서 퇴근하게도 해줬고, 여론의 뭇매도 맞아보게 했고 기나 긴 사과문을 쓰게도 했다. 그렇게 날 여전히 힘들게 하고 고민 하는게 나의 숙제지만 먼 훗날엔, 그 언젠가는 B2B 경로뿐만 아니라 이 블로그를 보고 있는 당신에게도 닿게 될 그날까지 열심히 키워보고 싶다는 나의 애정어린 소망으로 리뷰를 마친다.